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니 라 루사 (문단 편집) === [[오클랜드 애슬레틱스]] === [[파일:external/cdn.fansided.com/TonyLaRussa.jpg]] 오클랜드[* 지금이야 [[머니볼]]을 앞세운 [[빌리 빈|깨우친 사기꾼]]이 돈 없는 구단을 운영하는 정석을 보여주고 있지만, 이 당시 월터 하스 구단주가 있을 때에는 돈 많이 쓰기로 유명한 팀이었다.]에서 TLR는 현대 야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큰 실험을 단행하게 된다. 1988년에 [[데니스 에커슬리|구위가 급격히 떨어졌던 어느 투수]][* 에커슬리는 그 전까지 20승 시즌 한 번에 올스타 2회, 통산 151승을 거뒀으나 급격한 구위 난조로 1988년 이전에 [[중간계투]]로 보직을 바꾼 상태였다. 1987년에 에커슬리는 [[중간계투]]로서 괜찮은 구위를 선보이긴 했다.]를 불러서 "[[마무리 투수|너 오늘부터는 이기는 경기 9회에만 던져라]]"고 명령한 것이다. 여기서 핵심은 '''9회'''이다. 이 장면이 1이닝 마무리의 탄생인 것이다. 2~3이닝을 던지는 다이닝 마무리, 요즘 표현으로 [[중무리]]는 당시에도 있었다.[* 대표적인 선수로 [[호이트 윌헬름]], [[브루스 수터]], [[리치 고시지]] 등이 있으며 중무리였던 탓인지 400세이브 내외의 적은 세이브 개수로도 [[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|명예의 전당]]에 입성했다.] 그럼 그때는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가 별 차이가 없었네 할 수도 있겠지만, 그 당시 한국 프로야구는 그 역할을 [[선발 투수]]가 겸업하던 시절이다. 선발로 7이닝 던지고 이틀 쉬고 나서 7회에 구원등판 경기 마무리짓고, 다시 하루 쉬고 선발로 나오는 방식으로... 80년대 후반 한국프로야구에도 [[권영호(야구선수)|권영호]]나 [[김용수]] 등 전문 마무리 투수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[* 사실 권영호는 원래 선발이었고, 이 당시의 전문 마무리라는 말을 지금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. 선발 투수진에 여유가 좀 더 있던 [[삼성 라이온즈]]가, 당시 삼성 선발 중에서 이닝 소화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권영호를 [[중무리]]로 굴렸다는 이야기다. 대략 포스트 시즌이 되어서 뒤가 없는 상황이 되면 선발투수가 불펜 대기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, 이걸 정규리그 상황에서 한 것.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야구에서 이건 일상이었다. 그 당시에는 선발 로테이션이라는 개념도 불완전했던 시기다. 다만 김용수는 그 시대에 정말 드물게 전업 마무리 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, 말만 마무리지 86년에 선발 등판을 한 번도 안 하고 178이닝을 던지는 등 굴려지다가 90년부터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를 번갈아 맡는다.] , [[선동열]]처럼 선발 투수에게 체력적 여유가 좀 더 있으면 다음 등판 사이에 마무리로 등판시키는 전략이 90년대까지 남아있었을 정도.[* 이렇기 때문에 투수분업체계([[라루사이즘]])을 내세운 [[이광환]] 감독의 LG 트윈스가 1994년 우승을 차지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었다. 이를 두고 혹자는 한국프로야구는 LG의 1994년 우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주장할 정도.][* 5일 로테이션을 도는 선발 투수들은 휴식 기간 중에 몸풀기용 불펜투구를 하는데 2000년대 이후에도 어차피 불펜에서 던질걸 실전에서 던지면 더 좋지 않냐면서 선발 중간중간에 불펜 알바를 시키는 감독들이 있었다. LG의 [[박종훈(1959)|박종훈]], SK의 [[이만수]], 한화의 [[김성근]]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였는데, 불펜알바 이후 투수들이 하나같이 컨디션이 무너지면서 팀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.] 당초 전문가들은 이런 전례없던 시도에 대해 "대체 뭣하러 이런 쓸데없는 보직을 만들었냐"는 반응이었고, 에커슬리에 대해서도 '''다 이긴 경기 9회에만 등판하여 연봉 받아먹는 먹튀'''라며 혹평했지만, 이런 TLR의 개혁은 1988년 AL 우승[* 이 해 월드시리즈에서는 [[LA 다저스]]에게 패했다. 에커슬리는 발을 절뚝이며 들어선 대타 커크 깁슨에게 백도어 슬라이더를 구사하다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.]과 에커슬리의 사이영상 투표 2위와 104승 58패 시즌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결과적으로 1988년에 AL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. 또한 1989년에는 [[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]]를 누르고[* 당시 월드시리즈를 전후로 [[샌프란시스코]] 베이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그 지진의 광경이 경기 도중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져 월드시리즈가 취소될 위기까지 있었으며, 결국 그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리즈가 치러졌다. 자이언츠는 이 지진 이후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2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.]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뒀으며, 1992년에는 TLR의 황태자 '''[[데니스 에커슬리]]가 [[사이영상]]과 [[MVP]]를 동시에 거머쥐었다.'''[* 이는 2011년 [[저스틴 벌랜더]] 이전까지 투수가 MVP를 수상한 마지막 사례로 기록되었다.] 이후 이런 전담 마무리 투수는 현대 야구의 불펜 운용에 있어 [[필수요소]]가 되었으며, 과거 [[브루스 수터]] 같은 2~3이닝 마무리들과 달리 1이닝만을 투구하는 클로저들이 나타났고 [[트레버 호프만|지옥의 종소리]], [[마리아노 리베라|샌드맨]] 같은 600세이브급 전설적인 클로저들이 출현했다. 또한 [[선발 투수]]들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던 끝에 5선발 로테이션을 제대로 정착시켰으며, 선발과 [[마무리 투수]]도 중요하지만 좌타자가 많아지고 있는 현대 야구의 특성을 꿰뚫어보고 [[중간계투]]에서 좌타자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[[원 포인트 릴리프]]들을 기용하기 시작하여 현대야구의 불펜 운용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선발로서 효용가치가 떨어진 노장 좌투수들의 선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놓았다. 불펜, 나아가 투수진 운용에 있어 TLR가 만든 이 시스템은 오늘날 전 야구계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[* 현대 야구에서는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[[세이버메트릭스]] 쪽에서 나오고 있기는 하다. 성적이 좋지 않은 타자들이 좌완 우완 안 가리고 못 치듯이(...), 잘 던지는 투수들은 그냥 좌타자 우타자 안 가리고 잘 막아낸다. 대표적으로 좌완임에도 오히려 우타자에 매우 강했던 17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[[강영식]].]. 1990년에도 AL을 우승, 월드시리즈 3년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으며[* '10월의 사나이'(Mr. October) [[레지 잭슨]]이 군림하던 1976~78년 [[뉴욕 양키스]]만이 리그 3연패를 이뤄낸바 있고 TLR의 애슬레틱스 이후에는 1998~2000 월드시리즈 3연패와 2001년 [[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]]와의 명승부까지 총 4년 연속 리그 제패에 성공한 [[뉴욕 양키스]]만이 이런 기록을 달성했다.], 1991년에는 감독 통산 1000승을 달성하기까지 했다. 하지만 월터 하스 구단주가 사망한 뒤 에이스는 매각 처분되어 [[리키 헨더슨]] 등 그간 에이스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스타 선수들은 떠나기 시작했고 졸지에 돈없는 ~~그지~~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.[* 이후 [[샌디 앨더슨]]이 [[세이버메트릭스]]에 주목하며 돈을 아낄만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고, [[빌리 빈]]이 이를 계승하여 역사에 남을 명단장이 되었다.] 결국 TLR 역시 1995년을 마치고 [[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]]로 옮기게 되었다.[* 또한 데이브 던컨 투수코치가 세인트루이스로 따라갔으며 이후에도 [[마크 맥과이어]], [[데니스 에커슬리]]가 카디널스로 옮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